1992년 봄 칠산맨션 앞에서
사진은 누가 찍어 주셨나요? * 아이들 아빠가 찍어 줬어요. 87년에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이 남포동에서 카메라를 사왔거든요. 그때 그 카메라가 9만8천원.. 당시에 꽤 비싼 가격이었죠. 그때 당감동 살 때인데, 서면에서 데모한다고 버스도 안다니고 해서 돌아오는 길이 험난했다고 하던 기억이 나네요. 이 카메라는 우리 큰아이가 아직도 잘…
에덴공원, 보고싶은 어머니
당시 유치원에 관해 생각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 3남매였는데, 언니랑 남동생도 유치원 안 다녔는데, 저만 유치원에 보내주셨어요. 괴정 기동대자리 근처에 햇빛유치원이라고. 유치원이 잘 없던 시절이었는데, 아마 외국에서 원조 받아서 운영했던 걸로 기억해요. 기성회비도 매달 냈는데, 형편에 따라 150원, 300원, 450원 냈고, 제일 부잣집…
1990년 아이들과의 추억
그때의 하단은 어땠나요? * 애들이 낙동초등학교 다녔는데, 92~3년도 쯤에.. 동아대에서 데모 참 많이 했어요. 체류탄 냄새나서 애들이 눈물, 콧물 찔찔 흘리면서 집에 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저 뒤에 보이는 동산유지공장. 소기름으로 비누만들던 공장이었는데, 바람만 불면 냄새가 엄청 났어요. 무슨 냄새라 해야 카노… 꾸리꾸리…
에덴공원 하늘목장 카페에서
* 1974년 쯤, 에덴공원 근처의 하늘목장 카페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유난히도 많았던 플라타너스 나무와 하늘목장 앞에서 팔던 솜사탕이 생각이 나네요. 코닥 카메라에 끼워둔 두꺼운 롤필름 다 채우고 사진관에 맡긴다고… 꽤 늦게 현상 했던 걸로 기억해요. 사진 속 인물은 누구인가요? * 괴정에 신동교역이라고 큰 무역회사에…
아이들과 함께한 강변에서 한때
그때의 하단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 지금 하단중학교 옆 큰길이 낙동강변 길이었어. 그 강변길 따라 버드나무가 주우-욱 있었고… 저 멀리 사람들이 조개 줍는 곳①이 지금 가락타운 자리네. 아침이면 통통통 하면서 바지락 끄는 배도 다니고, 구포 가는 배도 다니고 했지. 사진 속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나요? * 둘 다 공부를 잘했어.…
을숙도,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
하굿둑 다리도 없었을 때인데, 을숙도는 어떻게 가셨나요? * 당시에 을숙도에 가려면 동산유지, 지금 SK뷰 아파트 자리 근처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가야 했어요. 시간표 대로 움직이는 정기 배편이 있는 게 아니라, 친구 넷이 돈을 모아 뱃사공 아저씨께 삯을 드리면 아저씨가 나룻배 노 저어서 데려다 주셨어요. 배가 일자로 쭉 가는 게…
나루터와 강변길
낙동강 하구 최남단에서는 하단 나루터가 유명했다. 하단은 지형적으로 강과 바다를 함께 끼고 있어 사람들이 살기 좋았고, 강과 내륙, 강과 해양의 물자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하단나루가 번성했다. 하단나루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 대동, 강서 대저와 명지, 녹산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주로 실어 날랐다. 하단나루의 옛 흔적은 가락타운…
사라진 시온섬
하단포구 앞에는 ‘시온섬’이라고 불리던 젊은이들이 즐겨 찾았던 낭만의 섬이 있었다. 하단포구 앞에 좁은 ‘샛강’을 사이에 두고 낙동강 안으로 길게 뻗은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작은 섬으로 전체가 갈대숲으로 덮인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낙동강 하구둑 건설과 함께 추억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1970년대 시온섬은…
하단 똥다리
하단 똥다리는 분뇨를 뽑아내는 다리였지만 낙동강 고깃배의 선착장이자 을숙도로 가는 손님을 태워 다니던 나룻배의 출발지였다. 전혀 예쁠 것 없는 이름이 붙은 이 다리는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되기도 했고 낭만적인 멋을 그려보는 연인들의 데이트장소가 되기도 했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하단 똥다리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어릴 적 기억과 청춘의 한…
에덴공원
아담과 이브의 낙원인 에덴동산을 표방하여 ‘에덴원’이라 이름 지었지만, 인근까지 운행하던 노선버스가 종점을 ‘에덴공원’으로 표기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대는 전부 갈대밭이었고, 초가집 몇 채 정도 뿐이었다. 에덴공원 데이트 코스 예전에는 서울 사람이 부산에 와서 송도 해수욕장과…